| 서문
“…이 수련생들이 파룬궁을 비방하는데 동의했더라면 살아 남았을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중국 당국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제안”하는 선택권이다. 2천년 전 이교도 지배자들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전에 순응하라는 선택을 제안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중국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파룬궁을 포기하라는 맹세을 하고 “전향”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핵심에서부터 박해를 묘사하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을 역행하고,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굴복하도록 강요한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그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단호한 것인가? 수련생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주장하면서 그렇게 타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옳고 그름이 타협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옳고 그름이 있는가? 만일 선이 악에 굴복한다면, 가치와 원칙이 무엇에 근거를 두어야 할 것인가? 선(善)에 대한 타고난 인식인 양심은 바로 인간성의 본질인 것이다. 그 외의 모든 것, 우리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조차 강탈 당할 수 있다. 양심의 개조는 아주 조금이라 하더라도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양심은 인간성이라고 정의하고, 양심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러므로, 양심을 유린하는 범죄보다 더 나쁜 범죄는 없다. 중국 정부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양심의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인간성의 파괴를 겨냥한 폭력이다.”
–– 책, “양심의 이야기” 에서 발췌 –– |